top of page

묵향이 스민 언덕 위에

  • 작성자 사진: 소우주
    소우주
  • 5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8일

글: 소우주 아트&필로소피랩 | 2025.05.18



이응노 화백의 1974년작 <주역 64괘 차서도> 중에서.주역의 첫번째 괘(왼쪽)과 마지막 괘를 표현한 작품
이응노 화백의 1974년작 <주역 64괘 차서도> 중에서.주역의 첫번째 괘(왼쪽)과 마지막 괘를 표현한 작품


프랑스에서 피어난 고암 이응노의 예술 유산

프랑스 보쉬르센(Vaucresson)의 언덕 위, 센강이 흐르는 풍경 속에 한국의 수묵 정신이 고요히 스며 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신 고암 이응노(1904–1989) 선생님과, 그의 예술적 동반자이신 박인경 화백.

두 분의 삶과 철학이 깃든 이곳 ‘고암문화유적지’는 단순한 유산을 넘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예술 공동체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머무는 다섯 채의 집


고암문화유적지는 단순한 건축 공간이 아닙니다.

고암 선생님의 예술 세계와 철학,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이어온 공동체적 예술 정신이 녹아 있는 장소입니다.

19세기 고암 아틀리에를 시작으로,


  • 프랑스 최초의 한옥 ‘고암서방’ (1992),

  • 국제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 ‘파리이응노레지던스’,

  • 박인경 화백의 작업실,

  • 그리고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고암 아카데미’까지,총 다섯 채의 건물이 자연과 예술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특히 고암서방은 실제 한국의 기와집을 해체해 프랑스로 옮겨 재조립한 유일무이한 건축물로, 센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하며 자연과 예술, 시간과 공간이 하나 되는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Photo from Leeungno Museum Website.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셀 빌모트(Jean Michel Willmotte)가 설계. 이응노 화백이 1964년부터 세르누쉬 미술관(Musée Cernuschi)에서 운영하며 3천여 명의 제자들을 배출한 파리동양미술학교(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향후 에꼴 드 이응노(l’École de Lee Ungno)로 운영 예정.
Photo from Leeungno Museum Website.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셀 빌모트(Jean Michel Willmotte)가 설계. 이응노 화백이 1964년부터 세르누쉬 미술관(Musée Cernuschi)에서 운영하며 3천여 명의 제자들을 배출한 파리동양미술학교(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향후 에꼴 드 이응노(l’École de Lee Ungno)로 운영 예정.



동양의 먹빛, 서양에서 꽃피다


1958년, 전쟁의 폐허를 뒤로 하고 프랑스로 건너가신 고암 선생님께서는“동양화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서양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낯선 땅에서 고암 선생님께서는 동양의 재료와 서양의 감성을 교차시키며, 수묵과 콜라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해 가셨습니다. 박인경 화백 또한 점묘법, 색면 추상, 앵포르멜 등 서구적 표현 방식에 동양적 감수성을 더해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작품 세계를 펼치셨습니다.


이 두 분이 창조하신 수묵 추상의 세계는 1960년대 파리 현대 미술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한국적 추상의 가능성을 서구 미술계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교육자로서의 고암 선생님


고암 선생님께서는 파리의 세르누쉬 미술관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시고,사군자, 서예, 산수화 등 한국 전통 회화를 프랑스 현지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제자분들께서는 지금도 유럽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며,고암 선생님께서는 단지 예술가를 넘어, 동양 예술 정신을 전한 문화적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파리동양미술학교에서 학생 지도 중인 이응노 화백
파리동양미술학교에서 학생 지도 중인 이응노 화백



120주년, 그리고 예술적 동행


2025년, 아트 바젤 인 홍콩에서는 고암 이응노 선생님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이응노·박인경 2인전: 예술적 삶의 동행》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고암 선생님의 대표작 ‘군상’(1985), 문자 조형 실험작 ‘무제’(1979)와 함께 박인경 화백의 ‘새’(2024), ‘장미’(2024), ‘고요한 아침’(2006) 등 두 분의 작품이 나란히 소개되며,그동안 이응노 선생님의 그늘에 가려졌던 박화백의 작품 세계에 다시금 조명이 비추어졌습니다.


특히 박화백의 ‘무제’(2024)에서는 바다처럼 번지는 먹의 물결 위로 문자들이 흩어지며, 시간과 침묵이 녹아든 시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그의 작품은 자연의 숨결을 섬세한 필선으로 포착하고,한국 수묵의 서정성과 정신성을 현대 언어로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소우주의 한마디

“국경을 넘어 피어난 묵빛의 유산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흐르고 있는 예술의 강줄기입니다.

고암의 숨결이 스민 그 언덕에서, 우리는 한국 예술의 미래를 봅니다.”



출처:

  • SPACE(공간) 2025년 5월호

  • Art Basel in Hong Kong 2025 전시 자료

  • 고암문화유적지 공식 정보



댓글


bottom of page